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당 합당 (문단 편집) === 합당 과정에서의 [[민주당(1990년)|이탈자]] === || [[파일:/pds/200803/04/71/c0002071_47cc15e112eda.jpg|width=100%]][* 사진에서 가운데에 주먹을 움켜쥔 인물이 [[노무현]]이고 그의 오른쪽에서 눈을 부릅뜨고 외치는 사람이 [[김상현(1935)|김상현]]이다. 참고로 그 앞쪽에 앉아서 웃고 있는 사람은 [[김우석(1936)|김우석]]으로, [[문민정부]] 출범 후 건설부(현 [[국토교통부]])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[[한보그룹]] 정태수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것이 폭로되면서 구속되었다.] ||[[파일:external/c1.staticflickr.com/4836416680_887d4051d6_b.jpg|width=100%]] || ||[[파일:/pds/200803/04/71/c0002071_47cc15de811a3.jpg|width=100%]] ||[[파일:external/img.segye.com/20090524001254_0.jpg|width=100%]] || >'''무효입니다!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? 이의가 있습니다.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!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?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?''' >---- >'''[[노무현]]'''[* 당시 [[통일민주당]] 소속 초선 국회의원이었다. 지역구는 [[부산광역시|부산]] [[동구(부산 선거구)|동구]].] 3당 합당 발표 직후에는 [[통일민주당]]의 거의 모든 의원들과 원외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. 심지어 [[상도동계]]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[[최형우(정치인)|최형우]]조차 공개적으로 "나는 안 간다"면서 합당 거부를 선언한 뒤 다른 합당 거부파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야당 창당을 준비했을 정도. 이를 보면 협상이 진짜 극비리에 이루어지기는 한 모양이다.[* 최형우 입장에서는 저런 이야기가 나올 만했던 것이, 최형우는 유신 체제와 5공화국 시절 상도동계 중진들 중에서도 행동대장 격으로 가장 강력하게 민주 투쟁을 했던 인물이었다. 당연히 군사정권에도 찍혀서 [[10월 유신]]의 공모를 최형우가 국회 연설에서 폭로하자 당시 임신한 아내까지 [[고문|남산에 끌려갔을]] 정도였다.] 그러나 김영삼이 직접 1:1 설득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김영삼의 간곡한 설득에 최형우가 결국 마음을 바꿔서 합당 동참을 선언했고 그 뒤를 이어 시간이 갈수록 김영삼의 설득에 넘어가는 인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결국 통일민주당의 거의 절대 다수가 합당에 동참하게 되었다. 하지만 김영삼의 설득에도 민주정의당, 신민주공화당과의 합당은 야합이라면서 끝까지 이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. 그 사람들은 [[김상현(1935)|김상현]], [[김광일]], [[장석화]], '''[[노무현]]''', [[김정길(1945)|김정길]][* [[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|5회 지선]]에 [[민주당(2008년)|민주당]] [[부산광역시장|부산시장]]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시 현직 시장이었던 [[한나라당]] [[허남식]]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.]이었는데 이들은 합당 발표 직후부터 격렬하게 반발했고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. 이때 김영삼은 노무현, 김정길은 어차피 동참 안 할 사람이라면서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. 다만 노무현은 훗날 "솔직하게 나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"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하며 이때의 김영삼을 회상하며 훗날 자서전에 [[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|나의 일그러진 영웅]]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. 하여튼 이후 노무현은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킨 김영삼을 떠나 김대중에게 가게 되었고 험난한 탈 보스 정치, 지역주의 타파 노선을 걷게 되었다. 한편 당시 야당에서 김영삼, 김대중 바로 다음 급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[[이기택]] 통일민주당 부총재는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결국 합당 거부로 마음을 정하고 앞에 언급된 통일민주당 내의 합당 거부파 의원들과 당시 무소속이었던 [[이철]], [[박찬종]]과 함께 [[민주당(1990년)|민주당]]을 창당했다. 당시 민주당은 소속 국회의원이 이기택, 김광일, 장석화, 노무현, 김정길, 이철, 박찬종, [[허탁]][* 1990년 4월 3일 보궐선거로 당선.] 딱 8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속칭 [[꼬마민주당]]이라고 불렀다.[* 참고로 김상현은 13대 당시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.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[[평화민주당]]을 창당했을 때 그를 따라가지 않고 통일민주당에 남았다.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[[서대문구 갑]] 지역구에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.] 김종필이 이끌던 [[신민주공화당]]에서도 대전직할시 [[동구(대전광역시)|동구]] 갑 선거구의 초선 [[김현(1947)|김현]] 의원이 민자당 합류를 거부하였다. 그는 무소속으로 있었다가 상술한 꼬마민주당이 [[신민주연합당]][* [[평화민주당]]이 1991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 재야 세력 일부와 통합하면서 이름을 바꿨다.]과 합당하여 [[민주당(1991년)|민주당]]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했다. 한편 뜬금없지만 무소속이었던 [[정몽준]], [[유한열]][* [[유진산]]의 장남.] 의원도 당시 3당 합당에 동참해 [[민주자유당]]에 합류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